[아침 햇발] 대한민국 울트라 슈퍼 킹 ‘갑’ / 김이택

비행기 안에서 남양우유를 옆에 놓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드는 윤창중씨. 온라인에 떠도는 이 패러디 사진은 윤창중 스캔들에 가려 잠시 잊혔던 우리 사회 ‘갑을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최근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쓴 책(이춘재·김남일, <기울어진 저울>)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 최강자, 이름하여 ‘울트라 슈퍼 킹 갑’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10년 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 중수부는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예외 없이 뒤졌다. 중수부장은 ‘국민검사’, 검찰총장은 ‘국민총장’이란 찬사를 받으며 스타로 떴다.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핵심 측근을 기소해 성역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대통령보다 검찰이 셀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얼마 뒤 서울지검 특수2부는 한 기업의 배임 고발사건을 파헤쳐 전·현직 임원들을 배임죄로 기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국민총장이 제동을 걸었다. 좀더 완벽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대검 연구관들로 별도 팀을 만들어 기록 검토를 시켰다. 공소시효가 다가오는 가운데 “사표 불사”를 외치며 배수진을 친 서울지검 차장검사의 항의 끝에 결국 시효 만료 하루 전 종범인 고용사장 둘만 기소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이 슈퍼갑의 막강 위력은 이후 법원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두 고용사장 사건은 1·2심에서 유죄가 나왔으나 대법원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그것도 대법원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독자들도 알고 있는 그 기업은 물론 삼성이다.

허태학·박노빈 두 고용사장의 배임 사건과 삼성특검이 기소한 이건희 회장 사건이 모두 대법원에 있던 2009년 2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돌연 재판부 개편을 단행했다. 허 사장 등의 사건을 맡은 박시환 대법관은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올려 제대로 다루기를 원했으나 이 대법원장은 심리중이던 이 사건을 박 대법관한테서 빼앗아 다른 부로 보내버리는 초유의 무리수를 뒀다. 박 대법관은 이에 반발해 직무를 거부하고 강원도로 잠적했고, 대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결국 두 사건 주심 대법관들이 이 원장을 찾아가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보하고서야 사태가 가라앉았다.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맡았던 이 대법원장이 자신이 심리에서 빠지는 불명예를 피하려 그랬는지, 아니면 이 회장의 유죄 판결이 나는 걸 막아보려 했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결국 6 대 5로 무죄가 내려졌고 이 회장은 구속을 면했다. 만일 유죄가 내려졌다면 종범인 두 고용사장보다 주범의 형량이 높아야 하니 실형 선고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통령보다 센 검찰이 ‘쫄고’, 대법원까지 휘둘리게 만드는 존재. 대한민국 ‘울트라 슈퍼 킹 갑’ 자격이 충분하다. 마지막엔 엠비가 숱한 비난을 감수하며 이 회장만 따로 원포인트 사면을 강행함으로써 그 막강한 지위를 공인해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판 종결 뒤 4년 가까이 지난 지난달 초 국민총장 송광수 변호사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얼마 뒤 이번엔 이 전 대법원장마저 삼성행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주위 만류로 무산되긴 했다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부실 수사 논란을 빚었던 조준웅 삼성특검 역시 3년 전 자식을 삼성에 특채로 보냈으니, ‘엑스파일’에서 선보였던 ‘관리’ 관행은 아직도 진행형인 모양이다. 을을 다루는 채찍만이 아니라 당근까지 갖춘 울트라 슈퍼 킹 갑을 그대로 두고 작은 갑들만 들볶아 봐야 갑을 문화가 고쳐질 턱이 없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by poiu23 | 2013/05/15 19:44 | 주절주절 | 트랙백(346) | 덧글(0)

[유레카] 정년, 길어진 중년의 무덤? / 허미경

사회는 이미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개인도 사회도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부터가 그렇다. 심리적 부적응이 있다. ‘짧고 굵게’ 담론, 고로롱 팔십까지 산들 뭣하겠는가 따위, 한 부서에서 40살 이상 직원 수를 뻔질나게 헤아리며 그 비율로 고령화 부서라고 규정하는 따위.

따지고 보면, 시대착오적 언어의 혼란이다. 고령화 시대의 핵심은 ‘길어진 중년’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과학 담당기자가 신경과학과 뇌과학, 의학, 사회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섭렵하고 과학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쓴 책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2011)를 보면, 중년의 나이는 40살부터 68살까지다. 일례로 2004년 발표된 ‘시애틀 수명 종단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1956년부터 40여년 동안 시애틀의 20~90살 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7년마다 계산능력·지각속도·어휘·언어기억·귀납추리 등 6개 범주의 인지능력 검사를 했는데, 20대나 30대보다도 40~65살이 최고 수행력을 보여줬다. 또한 40~65살에 받은 성적이 이들이 20대 때 받은 성적보다 좋았다. 인간 뇌의 절정기는 청년기가 아니라 중년기이며 중년 뇌가 가장 뛰어나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중년 나이대는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뇌는 40~68살에도 계속 성장한다. 뇌세포 중 미엘린이라는 백색 피막은 이해력과 관련있는데, 이것이 중년 말기에도 자란다.

인구 중 65살 이상이 7%가 넘으면 된다는 고령화 사회는 말 그대로는 ‘늙어가는 사회’다. 이보다는, 사태의 핵심을 드러내는 ‘길어진 중년 사회’가 옳다. 국내에서도 60살 정년 시대가 2016년부터 열린다 한다. 뒤집어 보면, ‘가장 뛰어난 뇌’를 지닌 61~68살 중년들이 일을 멈춰야 한다는 뜻.

허미경 책지성팀장 carmen@hani.co.kr

by poiu23 | 2013/05/15 19:40 | 주절주절 | 트랙백 | 덧글(0)

[야! 한국사회] 더 큰 폭력은 웃고 있다 / 한종호

패면 아무 소리 못하고 곱게 맞는다. 꿇으라면 아예 엎드린다. 숙이라면 코가 바짝 땅에 닿도록 한다. 이게 오늘날 약자들의 생존방식이 되고 있다. “라면 상무”, “빵 회장”, 그리고 “조폭 우유”라는 말로 조롱당하는 강자들의 횡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힘이 센 위치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억압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권리로 착각하고 있는 세태의 추한 몰골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제 못 참겠다 꾀꼬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예전의 습성을 그대로 내놓고 부렸다가 이들은 여론의 질타를 뭇매 맞듯이 맞고 있다. 사실 진즉에 맞았어야 할 매였다. 이들은 상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난리를 피운 모양이지만, 고쳐야 할 버르장머리는 도리어 저들에게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권력이 이들에게 거의 언제나 보호막이 되어 주고 문제가 생기면 저들의 편에서 약자의 항의를 묵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뭐가 무섭겠는가? “내가 누군데” 하는 의식이 꽉 차 있으니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도 그것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기고, “누구한테 까불어?” 하는 생각이 박여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단연코 “제왕의식”이 있다. 민주사회에서 이런 제왕은 낡은 폐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끊임없이 불화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역할을 ‘자본’이 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경우는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그리된 것이지만, 사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그냥 지나치고 있다. 무수한 노동자들이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되어 왔고 해고 이후 죽기까지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서는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 밖이다. 대한문 앞에서 몇 달이 넘게 항의집회를 하고 있어도 신경 끈 상태다.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 정도의 폭력을 넘어도 한참 넘는 상황이 아닌가? 누군가는 그리 말했다. “저게 뭐야, 몇 달씩이나 다들 보는 장소에서.” 그 몇 달 동안 아무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질타는 그 말에 없다.

언론이 지금 호들갑 떨듯이 갑자기 생긴 문제처럼 대서특필하고 있는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더군다나 그 뿌리로 내려가면 더욱 위태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노동 현장에서 공해로 죽은 사람들을 비롯해서 대자본의 인명경시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무응답으로, 거대 자본은 철저한 무시로 나가고 있다. 구조적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언론에서 비켜가고 있다.

이는 조직적 은폐다. 더 큰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발과 질타, 해결은 없는 사회가 그에 비하면 피라미도 안 되는 일에 열을 내고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위선 아닌가? 물론 그런 일들이 사소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 일에 이렇게들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보다 더한 일은 당연히 사회적 응징과 해결 모색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라면 상무를 비롯한 이들은 “아, 왜 나만 갖고 그래.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는데, 나는 재수 없어 걸린 거지 뭐”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이러고들 있는 사이에 더 큰 폭력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by poiu23 | 2013/05/15 19:38 | 주절주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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