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03일
애드버스터스(Adbusters)
# by | 2012/01/03 08:49 | 비교적 객관적인 | 트랙백 | 덧글(0)
# by | 2012/01/03 08:49 | 비교적 객관적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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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을 한 지난 몇년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늦은 밤 거리에서 트럭 짐칸에 불을 켜놓고 딸기를 파는 졸업생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군 제대 후 복학한 첫 학기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이다. 등록금은 지원되지만, 비전도 없고, 가르쳐주는 것도 없고, 삭막해서 견딜 수 없었노라고 했다. 회사 로고가 박힌 초록색 점퍼를 입고 네모난 공구가방을 들고 바삐 걷는 졸업생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여성들이 혼자 사는 주택에 인터넷과 유선방송을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졸업시키면서도 기백만원씩이나 하는 지방 사립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댈까 걱정이 되었던 아이다. 휴일이나 방학 때 책이라도 보려고 시립도서관엘 가면 졸업생 아이들이 우르르 인사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온갖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이다.
녀석들의 고3 시절이 생각난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다는 아이에게 내가 던진 위로란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것이었다.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뇌하는 아이들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통념 앞에 모두 무너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한겨레> 독자들이 고3 담임이라면, 30명쯤 되는 학급 아이들에게 어떤 진학지도를 할 수 있을까? 국어와 국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70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9급 공무원시험을 권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문학전집을 읽거나 드문드문 시집을 들춰보는 아이에게는 국어교육과를 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임용고사 경쟁률은 30 대 1가량 된다. 영어를 잘하고 논리적 사고가 우수한 아이에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떼돈을 번다는 국제변호사를 권할 수 있을 것이다. 학과는 중요하지 않으니, 대학 다니는 동안 1억원쯤 모아서 로스쿨 시험 준비를 해보라고 권할 수도 있겠다.
지난 11월1일 청년 30명이 ‘대학 거부 선언’을 했다. 그들이 발표한 글과 인터뷰 기사를 출력해서 숨죽여 읽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이 기사들을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못하고 있다. 언젠가, 어느 반에서 속에 품고 있던 솔직한 이야기들을 한 시간 동안 떠든 적이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번져가는 표정들이 잊히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장기불황과 공황의 가능성을, 석유고갈과 식량대란, 전쟁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는 공감했을 것이다. 내가 전해준 오늘날 대학의 모습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죽을힘을 다해 내달려온 아이들에게 출구가 없다는 나의 진단은 얼마나 가혹했을 것인가. 정규직 평생직장을 가진 내가 떠드는 실업과 비정규직의 나날, 그리고 그 반대편 대안적삶과 보이콧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공허했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는 내내 뒷골이 뻐근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가 지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이 모든 일이 실은 거대한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장 정직한 언어로써, 용기있는 행동으로써 드러내는 이들에게 눈물겨운 박수를 보낸다. 이들의 행동은 ‘눈 찢어진 아이’ 이야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가장 깊고 광대한 지층을 가로지르고 있다. 11월10일 수능 당일에는 수능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선언이 있을 예정이다.
# by | 2011/11/04 09:19 | 주절주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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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려다가 겨울바람 속에서 낡은 목도리 둘둘 말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껌이 다 팔리면 집에 가시겠지 생각하고 주머니를 털어 다 사버렸다. 물론 할머니는 가방에서 그만큼 더 꺼냈다. 저는 한겨울 머리 박박 깎은 주제에 할머니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지 않아 아예 며칠 동안 그 옆에 앉아 친구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연민이 바짝 말라버린 우리 사회의 통념상 이 정도면 외국에서 살다 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필리핀에서 선교사를 하고 계셨다. 그러니 초등학교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거기 학교를 다니다가 뒤늦게 모국의 대학교로 진학을 온 것이다.
문화충격, 당연히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대학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동안은 관계 속의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대한민국에 오니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였다. 이거 무슨 말인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실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진화를 위한 최고의 동력아니던가.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한번의 실수에 세상 끝난 것처럼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 후배들조차 성공을 위한 학점관리, 인맥관리, 스펙쌓기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조언을 하더란다. 그 아이가 보기엔 대학생들도 그저 나이 든 고등학생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와 연대, 공동체 의식 따위는 약에 쓰려고 해도, 길거리 개똥보다 찾기 어려웠다.
자유로운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곳. 색다른 생각 자체를 처음부터 막아버리는 곳.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꼴통으로 찍히는 사회. 그러면서도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곳.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세 번의 강좌를 마치고 나는 고향 섬으로 되돌아왔다. 두 계절이 지났다. 얼마 전 느닷없는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그 아이가 휴학을 하고 내가 사는 거문도로 왔다는 것이다. 무작정 왔고 무작정 미장원을 찾아들어 선원이 되고 싶으니 배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독거노인돌보는 것이나 밭농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침 미장원에 들렀던 포장마차 주인여자는 20대 처녀가 배를 타겠다는 말에 기겁을 해서 서둘러 식당을 소개해 주었고 거기에 취직을 했다. 마침 나도 가까이 지내는 후배 식당이었다.
그 아이는 요즘 서빙을 하고 마늘을 까고 설거지를 하며 지내고 있다. 저녁에 시간이 나면 주인아저씨가 장만해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산책한다. 내 서재에 와서 책을 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집 일곱살짜리 아들은 손전등을 들고 마을 끝으로 누나를 마중 나와 있기도 한다. 이런 풍경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그 아이는 마을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칭찬이 자자하고 노총각들이 무리지어 그 식당에 찾아오기도 한다.
일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그 아이는 자유롭고 풍부해지고 있다. 최소한 푸른 바다와 해산물 요리가 자신의 스펙에 포함될 것이다. 고민과 방황은 노력하는 자의 특징이다. 아마도 그 아이는 대기업에 입사는 못할 것이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삶을 보는 눈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니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그 아이의 가능성이다.
# by | 2011/09/23 13:05 | 주절주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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